경이와 동경은 언제나 대상보다 먼저 발생한다. 그것은 어떤 것을 향해 명확히 지정되기 이전, 인식이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하는 순간에 도착하는 감각에 가깝다. 이해할 수 없다는 깨달음, 닿을 수 없다는 거리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상태. 이 전시는 바로 그 인지적 진동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안수인과 구찬결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멈춰 세운 대상 앞에 선다. 그 대상은 자연이지만, 중요한 것은 자연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앞에서 작동한 감각의 구조다. 완결된 질서와 미세한 변이, 정교함과 불완전함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두 작가는 자신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와 그렇지 않은 영역 사이의 간극을 응시한다. 이 전시는 특정 대상을 설명하기보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 경이를 느끼고 무엇을 향해 동경하게 되는지, 그 감각이 발생하는 조건 자체를 조용히 드러낸다.
안수인의 작업은 환경과 구조가 인간의 인식과 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불안정해 보이지만 쉽게 붕괴되지 않는 구조에 주목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과 그 안에서 은밀하게 유지되는 긴장 상태를 시각화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이는 단단함과 취약함, 안정과 불안정이 동시에 공존하는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신작은 자연의 형상을 닮은 형태를 손으로 얼기설기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 결과물에 집중한다. 색종이, 얇은 판재, 고무찰흙과 같은 재료로 구성된 대상들은 자연을 직접 재현하기보다는, 그로부터 몇 가지 특징만을 남긴 채 형태와 색, 표면의 질감이라는 감각적 요소로 재구성된다. 이러한 구성 행위는 완결된 형상을 향하기보다, 격차와 불균형이 드러나는 지점에 머무르며 인간존재로서의 어설픔과 긴장을 마주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는 매 순간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의 태도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작은 정방형 큐브 형태(12.1×12.1×4.3cm)를 통해 자연의 형상을 하나의 제한된 공간 안에 수집한다는 개념을 설정한다.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큐브는 닿을 수 없는 대상을 소유하려는 마음, 혹은 가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선택하게 되는 태도를 담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 안에 담긴 형상들은 완전한 재현이 아닌 정교한 자연의 사이클과 하나되고자 하는 엉성한 존재로서의 어설픈 형태로 존재하며, 욕망과 인식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감정을 단편적으로 호출한다.
어린 시절 풀이 무성한 밭과 들이 가까운 곳에서 성장한 구찬결 작가에게 자연은 멀리서 관찰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상처럼 스며든 안식처였다. 사계를 통과하며 색과 형태로 끊임없이 얼굴을 바꾸는 자연물의 모습 속에서 그는 탄생과 번식, 소멸이 반복되는 순환의 질서를 목격했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을 환기시켰다. 특히 꽃은 생명의 구조가 가장 밀도 높게 드러나는 존재로 다가온다. 암술과 수술의 배치, 수분자를 유인하기 위한 색과 향, 개화의 시기처럼 번식을 위한 ‘유혹’의 장치들은 우연이 아닌 생존을 향한 진화의 결과로 작동한다. 동시에 가시와 털, 끈적한 수액과 같은 구조적 저항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생존의 언어로 공존한다. 이러한 상반된 작용들이 작가적 시선에 겹쳐지는 순간, 작가는 자연을 스스로 형성된 질서와 에너지의 집합을 활용해 시각적 탈바꿈을 하는 발화의 주체로 바라보게 된다.
꽃잎의 색과 표면에 남은 얼룩, 반복되는 패턴과 미세한 주름들은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외부 환경에 반응하며 형성된 생물학적 흔적들이다. 작가는 이 미시적 표면을 극단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자연의 조형성이 지닌 생물학적 의미와 에너지를 드러낸다. <Still, It is, Even Now(그럼에도, 지금 여기 있다)> 작품의 네 모퉁이에 자리한 알루미늄 주조물은 대국화의 꽃잎, 생물의 골격을 이루는 뼈, 식물의 암술과 수술 등에서 착안되었다. 이 형상들은 죽음, 생명의 유지와 번식, 유혹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며, 문화적·생물학적 맥락 속에서 여러가지 상징으로 작용한다. 이외 작품들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강렬한 색채와 패턴은 식물이 수분자와 환경을 향해 발신하는 신호처럼 작동하며, 식물은 더 이상 정지된 침묵의 상태가 아니라 리듬과 구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로 전환된다. 이러한 잔상은 강렬한 자욱으로 남아 삶을 관장하거나 유혹하는 식물의 고유한 언어를 전해주는 듯도 하다.
경이와 동경. 두 단어는 대단할 것 없이 반복적인 어제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진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마저 사치로 전락해버린 환경 속에서, 두 작가는 그로부터 시선을 들어 태초의 것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상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불러낸다. 경이를 회복하라고 요구하지도, 동경의 대상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가 무엇을 향해 멈춰 섰는지, 어떤 순간에 인식의 경계가 미세하게 떨렸는지를 조용히 환기한다. 이해 이전에 도착하는 감각, 소유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바라보게 되는 마음. 그 불완전한 상태를 결핍이 아닌 하나의 태도로 남겨두며, 다시금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를 미묘하게 틀어놓는다. 경이와 동경. 사라진 감정이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감각으로.